가상자산 시장은 이미 글로벌 금융의 핵심 축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가상자산 법제도는 2017년 기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최근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가상자산 9개 과제’를 발표했고, 오는 6.3 대선 공약에 이 과제를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늘은 가상자산 법제화의 과제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왜 6.3 대선이 가상자산 제도 개혁의 전환점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토큰증권과 디지털 금융강국 연계 필요성
현재 국내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 것은 바로 토큰증권 관련법의 조속한 개정입니다.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자산의 일종으로, 실제 자산을 토큰화해 유통할 수 있는 혁신적 수단입니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은 관련 제도를 정비해 디지털 자산 시장을 금융의 한 축으로 편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 흐름에서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2017년 ‘가상통화 종합대책’ 체제에 머무르고 있어, 투자자 보호는 물론 산업 진흥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특히 KDA는 토큰증권이 별도의 세금이나 공공예산 투입 없이도 산업 생태계 확장과 기업 자금 조달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임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토큰증권 시장은 2030년까지 국내 GDP의 14.5%인 약 367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토큰증권 외에도 한국의 가상자산 정책은 ‘디지털 금융강국’이라는 거시 정책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단순히 투자자 보호 수준에 머물러서는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이 시행 중인 암호자산법처럼, 한국도 금융안정, 시장육성, 산업진흥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정책 틀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2단계 가상자산법과 스테이블코인 별도 입법 필요성
두 번째로 중요한 과제는 2단계 가상자산법의 조속한 입법입니다.
현재 시행 중인 1단계 가상자산법은 전체 제도의 약 20%에 불과하며, 나머지 80%는 여전히 입법 공백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2단계 법안은 유틸리티 코인, 스테이블코인, 평가업, 자문업, 공시 시스템, 상장 기준 등 가상자산 생태계를 총망라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신속히 추진해야 산업 기반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상자산을 유틸리티와 같은 자산 성격과 스테이블코인 같은 화폐 성격으로 구분해 별도 입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화폐로 다루는 법적 구분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적 성격상 유틸리티와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 같은 법률 체계에서 처리할 경우 입법 지연과 혼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2단계 가상자산법은 1.5단계와 2.0단계로 나누어 '이용자 보호와 금융안정은 선(先) 입법하고, 시장 육성과 산업진흥은 후(後) 입법하는 방식'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입법 속도를 높이면서도 정합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접근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국제기구 권고안을 반영해 자본시장법의 관련 조항을 차용하는 방식은 이미 1단계 법안에도 적용된 바 있어 실현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ETF·은행·벤처지원까지 아우른 종합 개혁 필요
세 번째 과제는 자본시장법 개정과 가상자산 ETF 허용입니다.
현재 비트코인 현물 ETF는 미국, 캐나다, 독일 등 다수 국가에서 승인된 상황입니다. 특히 미국 SEC의 승인 이후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주식 계좌로 가상자산에 간접 투자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ETF는 금 ETF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이 흐름에 동참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은행의 가상자산 투자 및 보유 허용도 주요 과제입니다.
국제결제은행 산하 바젤위원회는 ‘가상자산 위험도 공시’를 전제로 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2017년의 규제 틀에 묶여 은행의 참여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참여는 자금세탁 방지 체계, 리스크 관리 역량 등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시장 신뢰도 확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가상자산 사업자를 ‘벤처기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현행 제도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현재 가상자산 업종은 카지노나 룸살롱 등과 같은 사행 업종으로 분류되어 있어 정부의 공식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습니다. 이는 현실적인 시장 구조와 투자자 수요, 산업 발전 가능성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KDA는 벤처기업육성법 시행령을 개정해 가상자산 사업자도 벤처지정이 가능하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상자산’이라는 용어 자체의 정비도 필요합니다.
국제적으로는 가상자산에 대해 암호자산 또는 디지털 자산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며, 이를 통해 포괄성과 기술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용어의 통일은 제도 신뢰성을 높이고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정합성을 맞추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6.3 대선은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화와 글로벌 허브 전환의 결정적인 갈림길입니다. KDA가 제안한 9개 과제는 단순한 규제 개선이 아니라, 디지털 금융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기도 합니다. 정치권과 정부, 산업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이 과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변화의 시작점입니다. 제도화 없는 혁신은 없음을 인지해야 할 때입니다.